물리적 거리가 마음의 거리로 변하지 않도록
디지털 유목민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단순히 ‘여행하며 일하는 삶’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실제로는 노트북 하나로 생계를 유지하면서 낯선 도시에 머물고, 전혀 다른 문화 속에서 일상을 살아가는 고도의 자기관리와 적응이 필요한 삶입니다. 그리고 그 삶의 이면에는 언제나 ‘가족과의 거리’라는 문제가 함께 존재합니다.
‘지금 어디 있어?’라는 가족의 질문에 “조지아에 있어요, 다음 달엔 태국 갈 것 같아요.”라고 대답하면, 부모님은 항상 “또?” 하시며 걱정 어린 눈빛을 보내십니다.
처음에는 이런 반응이 답답하게 느껴지기도 했지만, 시간이 흐르며 그 속에는 사랑, 걱정, 그리고 이해할 수 없는 새로운 삶에 대한 불안이 함께 담겨 있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디지털 유목민이라는 삶은 가족에게 낯설고 두려운 선택으로 보일 수 있습니다.
우리는 자유를 좇아 떠났지만, 그로 인해 누군가는 외로움과 소외감을 느낄 수도 있다는 사실을 잊지 않아야 합니다. 그렇기에 이 삶을 지속하기 위해선 가족과의 관계를 어떻게 유지하고, 어떻게 함께 걸어갈 것인가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필요합니다.
이번 글에서는 제가 직접 겪었던 경험과, 다른 디지털 유목민들과의 대화를 통해 얻은 실제적인 방법들을 바탕으로, 물리적으로 멀리 떨어져 있어도 가족과의 관계를 단단히 유지할 수 있는 방법들을 공유해 드리려 합니다.
떠나기 전 ‘이해’를 먼저 구하는 것이 첫 번째 준비입니다
디지털 유목민으로의 삶을 시작하기 전, 많은 분이 준비하는 것은 항공권, 숙소, 비자, 노트북입니다. 그러나 그보다 더 중요한 준비는 바로 가족에게 이 삶을 이해시키는 대화입니다.
제가 처음 이 삶을 선택했을 때, 부모님은 많이 놀라셨습니다.
“그게 직장이야?”, “왜 안정적인 회사를 그만두고 그런 생활을 하니?”, “언제 결혼할 거냐?”
물론 이해합니다. 그 세대에게는 ‘이동하며 살아가는 삶’이라는 개념 자체가 낯설었고, 불안하게만 느껴졌을 겁니다.
그래서 저는 무작정 떠나기보다, 충분한 설명과 대화를 먼저 선택했습니다.
내가 왜 이런 삶을 선택하려 하는지, 어떤 수입 구조를 가지고 있고, 어떤 목표를 가졌는지 차근차근 설명해 드렸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제가 떠나는 건 가족을 멀리하고 싶어서가 아니라, 저 자신을 더 잘 이해하기 위한 시간”이라는 점을 솔직하게 말씀드렸습니다.
이런 대화는 완전한 동의를 얻기 위한 것이 아니라, 오해를 줄이고 ‘이해의 틀’을 만드는 작업입니다.
당신이 아무리 멋진 계획과 비전을 갖고 있어도, 가족이 그것을 ‘무책임한 도피’로 느낀다면, 그 갈등은 장기적으로 관계를 흔들 수 있습니다.
디지털 유목민이 되기 전, 가장 가까운 사람들과의 정서적 합의를 만들어 놓는 것.
그것이 진정한 출발의 첫걸음입니다.
일상이 아닌 ‘관계’를 주기적으로 공유하는 루틴 만들기
디지털 유목민의 큰 특징 중 하나는 일상의 흐름이 고정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도시가 바뀌고, 타임존이 달라지고,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느라 바쁘다 보면, 어느새 가족과의 연락이 멀어지게 됩니다. 처음엔 “내가 괜히 방해하는 것 아닐까?”라는 생각에 연락을 줄이고, 그렇게 점점 마음의 거리도 멀어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는 의도적으로 가족과의 연락을 ‘일정한 루틴’으로 만드는 방법을 선택했습니다.
예를 들어,
매주 일요일 아침에는 영상통화로 안부 나누기
여행 중에는 한 도시당 최소 두 번 이상 사진과 함께 짧은 소식 보내기
중요한 결정(예: 도시 이동, 병원 진료, 일 관련 변화 등)은 공유하기
단순히 “잘 있어요.”라는 말보다,
“오늘은 포르투갈의 시장에 갔는데, 어머니가 좋아하실 만한 디저트를 봤어요.”
이런 식의 소소한 메시지 하나가 오히려 정서적 연결감을 더 단단하게 만들어줍니다.
가족은 당신의 ‘현재 위치’보다 ‘현재 감정’에 더 관심이 많습니다.
‘지금 어디 있냐?’보다 ‘지금 잘 지내고 있냐?’는 마음을 전해주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그래서 저는 단순한 정보 전달보다는, 감정을 나누는 대화를 주기적으로 이어가려는 노력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직접적인 만남보다 중요한 건 ‘정서적 동행 감’입니다
디지털 유목민이라는 삶의 특성상, 가족을 직접 만나는 일이 점점 줄어들 수밖에 없습니다. 설이나 추석 명절에도 귀국하지 못하는 경우가 생기고, 부모님의 생신이나 조카의 돌잔치에도 영상통화로 대신해야 하는 현실은 늘 죄책감으로 남기도 합니다.
그럴수록 저는 ‘물리적 만남’만큼이나 정서적 연결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더 깊이 느꼈습니다.
특히 부모님은 자녀가 옆에 있는 것보다도, ‘잊지 않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 것을 더 소중하게 생각하십니다.
예를 들어,
- 생신에는 한국에서 꽃 배달 서비스로 꽃과 케이크를 보내드리기
- 가족 단톡방에 과거 가족여행 사진과 함께 추억 회상 메시지 보내기
- 가족의 건강검진 결과나 병원 일정 등을 캘린더에 기록해 두고 함께 챙겨드리기
이런 행동은 직접적인 만남은 아니지만, 지속해서 ‘함께하고 있다’는 느낌을 만들어줍니다.
또한, 제가 새로운 나라에 도착할 때마다 가족들에게 먼저 사진과 간단한 위치 정보를 공유하면서,
“여기 인터넷 빠르고 병원도 가까워요. 걱정하지 마세요.”
라고 알려드리면, 걱정 대신 안심을 드릴 수 있고, 그로 인해 감정의 소통이 훨씬 부드러워집니다.
디지털 유목민의 삶이 외로워지는 순간은 사실 ‘거리에 의한 단절’ 때문이 아니라, ‘감정의 교류가 멈춘 순간’이라는 걸 저는 많이 느껴왔습니다.
자유로운 삶에도 관계는 반드시 설계되어야 합니다
디지털 유목민으로 살아가면서 저는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아무리 자유롭고 새로운 도시에서 신나는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어도, 가족과의 관계가 소홀해지면 마음의 불균형이 반드시 찾아온다는 것입니다.
디지털 유목민이라는 삶은 개인의 선택이지만, 그 선택의 영향은 나만이 아니라 내 가족에게도 함께 작용합니다.
그래서 저는 이 삶을 선택한 이후에도 항상 이렇게 생각합니다.
‘나는 떠나왔지만, 혼자는 아니다.’
그리고 이 생각을 현실로 만들기 위해, 관계도 ‘설계’해야 한다는 책임감을 갖게 되었습니다.
물리적인 거리는 피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정서적인 거리는 내가 얼마나 노력하느냐에 따라 얼마든지 좁힐 수 있습니다.
디지털 유목민의 삶이 ‘가족을 멀리하는 삶’이 되지 않기 위해,
우리는 조금 더 자주 연락하고, 조금 더 자주 마음을 전하고,
조금 더 자주 “사랑해요, 고마워요.”라는 말을 해줘야 합니다.
지금 이 글을 읽고 계신 디지털 유목민 여러분,
혹시 오늘 가족에게 안부를 전하셨나요?
여러분이 전 세계 어디에 있든,
여전히 누군가의 딸이고, 아들이며, 동생이고, 형제이고, 부모임을 잊지 마세요.